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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의 대부 대니얼 카너먼의 마지막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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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을 기억할 것이다.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연구한 분으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알려져있다. 

 

 

작년 이맘때 쯤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90세의 나이인지라 노환이었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 전 그의 사망에 대해 다룬 기사를 읽게 되었다. 

카너먼의 공동저자로 협력했던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가 쓴 글이었는데

그의 사망이 사실은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이었음을 밝히며

그가 조력 자살을 택하게 된 과정과 이유에 대한 나름의 추측을 담고 있었다. 

 

 

I have believed since I was a teenager that the miseries and indignities of the last years of life are superfluous, and I am acting on that belief. 

 

저명한 학자로 학계에서 눈부시게 성공한 그였지만

말년의 그는 아내가 치매를 앓다가 사망하는 등 가슴아픈 일을 겪었으며

노환에 따른 건강 문제를 겪게 되었으며 인지기능의 상실을 겪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삶의 여러 부분을 향유했고 행복을 느꼈지만 

건강과 인지기능의 점진적인 쇠퇴로 인해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고 느낀 것 같다. 

 

I am still active, enjoying many things in life (except the daily news) and will die a happy man. But my kidneys are on their last legs, the frequency of mental lapses is increasing, and I am ninety years old. It is time to go. 

 

카너만의 연구 결과 중에 "peak-end rule"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즐겁거나 고통스러운 것으로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오래 그 즐거움이나 고통이 지속되었느냐가 아니라

그 감정이 정점(peak)과 결말(end)에서 얼마나 강렬했는지에 달렸다는 점이다. 

 

이 법칙을 그의 상황에 대입해 보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으며 고통스러운 노년을 연장하는 것보다는

아직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결말로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Not surprisingly, some of those who love me would have preferred for me to wait until it is obvious that my life is not worth extending. But I made my decision precisely because I wanted to avoid that state, so it had to appear premature. I am grateful to the few with whom I shared early, who all reluctantly came round to support me.

 

그는 조력 자살을 실행하기 전에 프랑스에서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이후 스위스로 이동하여 이 결정을 실행했다고 한다. 

 

참고로 스위스에서는 특정한 조건이 충족될 경우 조력 자살이 허가되는데

기관에 따라 조건이 다르지만 이기적인 모티브가 없어야 하고 

자발적이며 숙고한 결정이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당사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 등의 조건이 있다고 한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인간의 불합리성과 인지편향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그가

마지막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그의 조력 자살은 큰 울림을 갖는다.

 

나는 그가 불완전한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듯

그렇게 존엄하게 행복하게 갈 수 있는 권리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내 삶의 지속을 결정하는 때가 오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싶다. 

인간은 크든 작든 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에게 주관적으로 가장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결정이란 것은 존재하며 

그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것이 우리가 가진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때가 올 때까지 나는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는 지금의 일상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기억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정점이 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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