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트래블을 시작한 지 8개월이 되어 간다.
말 그대로 천천히, 느리게 여행하는 것이다.
지난 8개월 동안 내가 여행한 곳은 고작 3개국.
비자/체류 제한이 없었다면 이것보다 더 느리게 이동했을 것 같다.
한 나라 안에서도 도시 하나를 정해놓고 거기에만 있든지,
아님 한 번 정도로 이동을 최소화한다.
언젠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한달살기.
짧은 일정에 모든 관광명소를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문화에서 탈피하고
한 곳에 머물며 여유롭게 여행지의 일상을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게는 한달살기도 어딘지 바쁘게 느껴져 슬로우 트래블을 하게 되었다.

한 곳에 두어 달 있는게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하던 우려와 달리
나는 지금의 페이스가 만족스럽다.
비행기를 탄다거나 장거리를 버스, 기차로 이동하는 일을 피곤해 하는 편인데
슬로우 트래블을 하면 이런 걸 최소화할 수 있어서 좋다.
한달살기를 해봤다면 맘에 드는 장소에서는 한달살기도 짧게 느껴진다는 걸 알 것이다.
치앙마이에서 두 달을 지냈다.
먹고 싶은 태국 음식, 하고 싶은 것들, 방문해보고 싶은 곳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갔는데
치앙마이를 떠날 즈음에는 그 리스트가 오히려 더 늘어나 있었다.
크리미한 베이스의 똠양꿍을 먹으면 로컬들이 즐겨먹는다는 맑은 국물의 똠양꿍도 먹어보고 싶었고,
로컬 시장 가는 재미에 빠지니 이동네 저동네 로컬 시장을 빠짐없이 구경해보고 싶었다.
한글 책이 있는 도서관에 가보았더니 못 읽어 본 한글 책들이 너무 많아서 독서 리스트까지 추가 되었다.
사람 맘이란 게 이렇다.

누구에게나 잘 맞는 방식이 아닌 건 확실하다.
더 여러 장소를 방문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이런 페이스에 답답해 할 것 같다.
예전의 나 역시 직장에 다니며 시간에 쫒기느라 바쁘게 여행을 했다.
몇 년 전 열흘 남짓의 시간 동안 스페인에서 서너 도시를 여행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가면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하는 생각에 욕심을 부리다 보니
어느 한 곳에서도 여유롭게 구경하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쉬웠다.
슬로우 트래블을 하고 싶지만 지겨울까봐 고민된다면
같은 지역에서 숙소만 다른 동네로 옮겨 다니는 것도 추천한다.
내 경우 대개 2주 간격으로 동네와 숙소를 옮기는 편이다.
체크인과 체크아웃이라는 절차가 귀찮긴 하지만
매주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보는 건 정말 좋아한다.
새로운 동네에 가면 마트나 시장을 구경하기도 하고
동네 맛집을 찾아다니며 (잠시나마) 단골가게를 만들기도 한다.
매일 시원한 저녁 때면 이골목 저골목을 다니며 산책을 즐긴다.

같은 도시라 해도 동네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와 환경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고
오토바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일도 줄일 수 있다.
은퇴자나 원격 근무가 가능한 분들 중 한달살기로는 부족함을 느끼시는 분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좋아하지만 비행기 타는 건 안좋아하거나
잦은 이동에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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