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책이 있다.
Die with Zero라는 책이다.
이 책은 빌 퍼킨스(Bill Perkins)라는 미국의 벤처 캐피털리스트 가 쓴 책이다.
저자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죽을 때까지 자산을 축적만 하는 대신
자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후회 없는, 자신에게 가장 만족을 주는 삶을 살자고 말한다.
우리가 시간과 삶의 에너지를 돈과 교환하기 때문에
돈은 일종의 저장된 삶의 에너지 life energy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게 되면,
결국 소중한 삶의 에너지를 낭비한 셈이 된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은퇴에 가까워지거나 은퇴를 한 사람들이
이미 남은 인생을 위한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대신
돈을 움켜쥐고만 있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해 아쉬워한다.
물론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난 세상에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가진 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있다가 죽을 때 자녀에게 물려줄 계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자녀 역시 노년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노년에 자산을 물려받는 것보다 더 적은 자산이라도 젊었을 때 물려받는 것이
자녀의 삶에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젊은이들이 나중에는 돈 주고도 사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쌓는 대신
돈을 벌기 위해서 젊은 시절을 희생하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그는 대학 시절 가진 돈을 다 털어 유럽 여행을 떠났던 친구와
푼돈을 아끼려고 아무런 모험도 없이 집과 회사를 오가며 살았던 젊은 날의 자신을 대조하며
젊은 시절의 소중한 인생 경험은 두고두고 기억되어 평생동안 삶을 풍요롭게 하기에
경험을 위해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모든 사람에게 어필하는 책은 절대 아니다.
충분한 노후 자금이 없는 상황이라면
돈을 다 쓰고 죽을 계획을 세우라는 말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몇년 전의 통계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도 은퇴자들의 절반 가량이
거의 파산 상태로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
하지만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자산을 어느정도 축적한 은퇴자들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돈이 충분한데도 모으기만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러한 은퇴자들에게 어필하는 책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 했다.
나 역시 내 자산이 노후를 위해 충분할지 백퍼센트 확신할 수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읽었던 재테크 관련 책들은 자산을 불리는 것의 중요성만 강조했다.
물론 자산을 불리는 것은 정말 중요하며 나 역시 2-30대 시절 강박적으로 여기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인생은 돈버는 일만이 전부는 아니다.
자산을 불리기만 하다가 죽는다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는 일일 것이다.
저자처럼 나도 자산을 모으는 과정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경험을 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희생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어떤 경험들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또 어떤 경험들은 이제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경험을 같이 할 사람들이 더 이상 내 곁에 없거나
경험에 대한 흥미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몸이 아프거나 약해져서 경험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생겼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보고 느끼는 삶은
내 자신에게 조금은 덜 미안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은퇴자금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을 한번쯤은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지, 그리고
나에게 돈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지금 당장 해야할 경험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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