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대해 항상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몇몇 국가들을 여행해 본 경험은 있지만
내 여행은 멋진 건축물이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즐기다 돌아오는 정도에서 끝났고
여행을 하며 박물관을 방문하거나 해당 국가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곤 했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는 즉시 유럽은 내게 별 상관없는 곳이 되어버리곤 했다.
유럽의 역사나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나의 이해는 그야말로 단편적인 사실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최근에 읽게 된 조지 프리드먼의 책은 유럽의 지정학적 갈등과 그 배경이 되는 역사적, 문화적 요인들에 대해
조금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의 제목은 Flashpoints: The Emerging Crisis in Europe
찾아보니 한국에는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지정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저자인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은 헝가리 출신의 미국인 정치학자이자 지정학 전문가이다.
Flashpoint는 화약고, 발화점, 갈등이나 위기의 발단, 일촉즉발의 지점 등을 의미한다.

십년 전인 2015년에 출간된 책으로
출간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
예를 들어 극우세력의 부상, 이민자 문제,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가능성에 대해
저자가 십년도 전에 이미 경고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부모는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으로 나치의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이러한 저자의 배경은 그가 유럽의 역사와 지정학적 상황을 바라보는 렌즈가 되었던 것 같다.
저자는 유럽을 크게 유럽 본토와 유럽 반도로 나누고 본토와 반도 사이의 갈등,
러시아와 주변국들, 프랑스와 독일, 지중해 국가, 터키, 영국 등의
정치적 경제적 배경과 여기서 나온 심리를 차례로 분석한다.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의 변화에 대해 분석하고
이후 출범한 EU 내에서의 분열과 갈등, 미국과 유럽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이민자 생활을 오래 한 내게는 이민자인 저자가 보는 유럽의 이민자 문제도 흥미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에서의 이민자 문제와 미국에서 이민자 문제가 다른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미국에서는 이민자라도 자기 고유의 문화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의 규범과 문화를 받아들이면 일원이 될 수 있다.

유년 시절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왔던 저자에게는 유대인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가 미국인이 되는 것에 방해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에 방해가 되었던 것은 유년 시절 농구공을 이상하게 던진다거나
대학 캠퍼스에서는 그가 자라난 브롱스 특유의 거친 액센트 같은, 그가 속한 집단의 norm에서 벗어나는 행동들이었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노력하면 고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한번 이방인은 영원히 이방인이다.
유럽국가들의 문화는 좀더 복잡하고 깊어서 유럽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유럽인이 되는 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이러한 차이점은 최근 더욱 심각해진 유럽의 이민자 문제의 배경이 되며
경제 상황과 맞물리면 유럽 국가들에서 극우 세력들의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There will also be increased tension between radical political parties and mainstream parties.
Some of these radical parties will be on the Left, but the most powerful ones will be on the Right because they will exploit anti-immigrant feeling."
저자와 가족들의 어두운 과거사로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하는 책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위트 넘치는 부분도 군데군데 보이고
성인이 된 저자가 여러 유럽 국가를 경험하며 느낀 점도 흥미롭다.
책을 읽으며 소소하게나마 유럽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남부 유럽의 흥정 문화.
흥정이라는 것이 무역 문화가 발달한 남부 유럽에서는 일종의 사회적인 이벤트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둘 다 즐기는 경험인 반면에 북유럽에서 가격은 미리 고정되어 있고 흥정이 불가하다.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며 왜 어떤 나라들은 시간 걸리고 귀찮게 흥정을 하는 것이 관례인지 궁금했었는데
과거의 무역 문화에서 발생한 관습이라는 말이 된다.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은 유럽이기에 유럽이 과거의 잘못에서 배웠다면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 간의 이해가 너무나 상이하여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의 대가가 싸움을 하는 것의 결과보다 더 클 때 발발한다고 한다.
그는 발칸반도, 우크라이나, 지중해 지역 등이 유럽의 플래시포인트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Europe is a normal place, and wars are not caused by a failure to learn from history or bad manners. They are caused by divergences of interest so profound that the consequences of not fighting are greater than the consequences of fighting."
"The most important conflict has already emerged. It is the battle between the mainland and the peninsula for the borderlands between the two. The main struggle is for Ukraine… The shattered economy of Ukraine, the reluctance of Germany to challenge Russia, and the distance of the United States give Russia a huge advantage."
나처럼 유럽의 지정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더 이해하고 싶은 분들,
유럽 여행을 앞두고 유럽이라는 지역을 좀더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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