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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일상

관망하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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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같은 장세가 계속되면서 주식 시황과 헤드라인에 관심을 잃었다. 매일 장이 열리기 전에 옵션 트레이딩을 계획하던 것도 중단했다. 유일하게 휠 전략만 지속하고 있다. 

 

나스닥 지수가 12% 오르고 빅테크 주가가 하루에 15 퍼센트 넘게 움직이는 것은 내 투자 인생에서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주가를 확인하고 잠이 덜 깨어 잘못 본 줄 알았다. 

 

어제 장은 다시 셀오프. S&P500이 3 퍼센트도 넘게 떨어졌는데 이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장이 올라도 좋은 게 아니라 그래봐야 트럼프가 한 마디 하면 또 떨어지겠지 하고 시큰둥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포트폴리오는 꽤 큰 타격을 받았지만 관세 전쟁에서 타협점에 도달한다면 시간은 걸릴지언정 복구가 될 것으로 보고 차분히 지켜보는 중이다. 초기에 바이더딥을 하느라 현금을 소진한 후에는 손실 났던 종목들 몇 가지를 재배치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난 몇 달 동안 거의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밤이면 트레이딩을 하느라 늦게 잠에 들거나 새벽 서너 시에 깨기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재밌어서 한 일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관심이 덜해진 것도 차라리 잘 된 것 같다. 여행과 휴식에 집중할 타이밍인 것 같다. 

 

이른 오후가 되면 매일 바닷가로 향한다. 해변을 걷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오후를 보낸다. 4월의 미케비치는 아름답다. 따뜻한 햇살을 마음껏 쬐며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구겨져 있던 마음 어딘가가 팽팽해지는 느낌이다. 

 

 

저 멀리에선 일렁이던 큰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올 때 쯤이면 흰 거품을 토해내며 작게 부스러진다. 시장이 이렇게 출렁일 때에는 물살을 타기보다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여행자 신분이지만 언젠가 한 곳에 좀더 오래 정착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렇게 된다면 따뜻한 동남아 어느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래봐야 영주권은 힘들 것이고 장기 비자를 얻는 정도가 될 것 같다. 

 

오래 이민자 생활을 해온 나는 타국에 정착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알고 있다. 기대감과 설레임이 가득한 몇 개월의 허니문 피리어드가 끝나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 현실이 펼쳐진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겨울 초입이 되면 몸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한국이라면 가장 추웠을 올해 1-2월은 예외였다. 따뜻한 나라에서 보냈고 겨울이 없었기에 가장 행복했던 겨울이었다. 

 

미케비치의 따뜻한 모래 위를 걷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이런 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가 떼로 몰려오는 도로며 호객꾼과 시끄러운 노래방 소리로 가득한 동네가 생각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해변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차선의 도로인데다 로컬 동네의 혼잡한 교통에 비할 바 아닌데도 길을 건널 때면 긴장을 하게 된다. 머뭇거리고 있는 새에 건너편에서 현지인 분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길을 건너온다. 현지인들은 오토바이가 오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이 유유히 길을 건널 수 있는 스킬이 있다. 차가 오는 편으로 뒤돌아 슬쩍 눈길을 주는 걸 보니 도와줄까 말까 망설이는 것도 같다. 

 

저녁은 그랩으로 구운 고기와 반쎄오를 배달시켰다. 소스 두 봉지와 상추, 숙주, 파파야, 오이가 섞인 큼지막한 채소 한 봉지, 창호지처럼 얇은 라이스페이퍼 한 웅큼이 딸려왔다. 베트남은 어딜 가든 고기요리가 맛있다. thịt nướng (구운 고기)이 들어간 음식은 반미이든 국수이든 실패한 적이 없다. 고추와 마늘이 딸려온 것이 어쩐지 반갑다. 

 

 

저녁에는 유튜브로 블룸버그 라이브를 보며 장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동부 시간으로 새벽 여섯 시부터 진행되는 이 생방송을 위해 이 진행자들은 얼마나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하는 걸까. 한국어든 영어든 잠을 못 자면 말이 헛나오거나 발음을 미스하는 나는 몇 시간이고 또렷한 발음으로 속사포처럼 복잡한 시장 상황을 분석하는 이들이 가진 능력이 너무 부럽다. 

 

요즘은 트레이딩을 자제하고 있지만 가끔 하게 되는 날에는 미리 옵션 가격도 체크하고 사용하는 전략과 시나리오를 미리 검토한다. 프리마켓 상황을 보아 장이 오르는 날에는 콜옵션 매도를 준비하고 빠지는 날엔 전에 매도해 놓은 것을 되사서 포지션을 정리하는 것을 준비한다. 

 

오늘 프리마켓은 하락하다가 반등하는 중이다. 중국이 더 큰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뉴스가 들려온다.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한 일이 많았던 요즘이지만 내게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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