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에 와서 처음 묵은 숙소에서 체크하는 날이다. 숙소는 그럭저럭 지낼 만 했지만 많이 시끄럽고 자동문도 두 번이나 고장나는 등 여러 이슈들이 있어서 다시 묵을 생각은 없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는 것은 좋았고 그 덕에 야채를 실컷 먹었다. 최근 몇년 간 이렇게 쌈을 많이 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오이, 상추, 깻잎, 고수를 꾹꾹 눌러담아도 일 이 달러 정도. 덕분에 태국에서 찌운 살이 조금 빠져서 실종되었던 복근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시장에 갔을 때 바가지 쓸 까봐 긴장하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상인들은 정직하게 가격을 불렀고 몇 차례 시장에 오다보니 단골 가게도 생겼다. 갈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채소가게의 할머니, 삶은 고구마를 고작 두 개 사는데 카사바 뿌리며 땅콩이며 덤으로 주시던 아줌마가 기억에 남을 것이다.

숙소 근처에 있는 백반집에서는 처음으로 베트남 반찬도 먹어봤다. 맘에 드는 반찬을 몇가지 고르면 밥이 든 용기에 조금씩 담아주고 3만 5천동을 받는다. 돼지 비계가 들어간 반찬이 많은 것 빼고는 반찬도 입에 맞아서 자주 갔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동네는 아니다. 이곳저곳 지저분하고 방심하고 걸어가다가는 개똥을 밟기 쉬운 동네였다. 딱 봐도 외국인인게 티가 나는지 길을 가면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바람에 외출할 때면 부담스럽기도 했다. 인도가 오토바이와 노점으로 점령되어 있어서 어차피 산책이라는 게 어려운 동네였다.

이곳에 도착한 다음날 현금을 뽑고 돌아오는 길에 신호등을 건너다가 파란불인데도 달려오는 오토바이며 차에 혼비백산했던 기억도 난다. 어찌어찌 건넜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큰 길을 못건너는 트라우마를 얻었다. 다행히 이 동네를 벗어나 좀더 번화가에 가면 파란불이 켜지면 차가 선다는 것을 알았다.

베트남에 처음 와서 조금은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태국에서의 시간이 평화롭고 행복했던 탓이다. 처음 와 본 베트남은 어딜 가든 시끄러웠고 오토바이가 너무 많았다. 화폐 단위가 너무 커서 계산을 할 때면 0을 몇 번이나 세어야 했다. 외국인 바가지를 쓸까봐 사기를 당할까봐 긴장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 곳에서 지내면서 천천히 베트남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가던 시장의 상인들은 정직했고 많이 사지도 않았는데 덤을 주기도 했다. 잘 하면 일 달러로 로컬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단 물이 떨어지는 망고를 사먹을 수 있었고 한시장에서 단 돈 이 달러에 산 나이키 짝퉁 티셔츠는 꽤 입을만 하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반쎄오와 돼지고기 꼬치구이가 너무 맛있었고 아보카도 아이스크림인 껨보는 사랑이다.
vietnam is starting to grow on me. 그래도 여전히 숙소 앞 큰 길은 못 건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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