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하기

나의 파이어 이야기 1: 시작

파이어 여행자 2024. 10. 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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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파이어(FIRE) 족'이다. 

 

혼자 힘으로 미국에 와서 대학원 공부를 마쳤고

그 후 10여년 동안 회사에서 일하며

경제적 자립을 위한 자산을 마련했다.

 

작년에 목표했던 자산 금액을 달성한 후에는

직장을 그만 두었고 지금은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처음으로 '파이어'를 접하게 된 것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에서 일할 때였다.

 

당시 나는 회사 일을 무척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직원들의 워라밸을 존중하는 편으로

공식적인 업무 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였다. 

 

그런데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같이 초과 근무를 했다. 

아침 5시면 일어나서 업무에 필요한 코딩 공부를 하고

7시 전에 출근을 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곤 했다. 

주말에도 하루는 회사 일을 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국의 회사에서는 

초과 근무가 필요한 상황이 아닌데도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을 좀 이상하게 본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뛰어나지 않은 머리로 그나마 괜찮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한 덕분인지

입사하고 맡은 프로젝트에서 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고

나는 상사에게 업무 성과에 대한 호평과 칭찬을 받았다. 

 

나는 노력으로 일군 조그마한 성공에 가슴이 벅찼고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 성취감이 실망과 불신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 이뤄낸 결과가

누군가의 탁월한 리더쉽의 결과로 알려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재주 부리는 곰이 된 것처럼 느꼈다. 

 

그때부터 직장 생활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환멸감과 무력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올라가지 않는 한

윗선에 있는 이들의 게임에 체스 피스처럼 이용되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존재가 될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습관처럼 여전히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이런다고 달라지나'하는 회의감을 꾹꾹 누르고

적극적이고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전전긍긍했다. 

 

 

그러던 어느날, 서점에 갔다가 파이어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조기 은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었다.

 

한국의 근면한 문화와 미국의 청교도적 직업윤리에 젖어 있던 나에겐

젊은 나이에 퇴직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놀라웠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파이어 족'들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한 때 나처럼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무력감과 좌절,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는 점, 그리고

돈보다 자신의 삶을 설계할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이 크게 와 닿았다.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희망 같은 것이 꿈틀하는 것을 느꼈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은퇴를 하려면 얼마가 필요할지 계산해 보았다. 

 

당시 나는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던 대학원 시절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로워진 편이었다. 

 

하지만 은퇴자금을 계산해 본 순간 

얼마나 갈 길이 먼지를 깨달았고

목표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통스럽더라도 대학원생 시절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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